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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책

[서평] 에리히 프롬 -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by 주말작가 2021. 5. 15.

대학교를 다닐 때, 심리학 기초 수업 중 에리히 프롬의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도 성격심리학이니 뭐니 하는 책에서 사랑에 관한 그의 철학을 너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접하고는 이 사람의 이론은 내 취향이 아니겠거니 하고 알려하지도 않았던 작가이자 심리학자이다.
<소유냐 존재냐>와 < 사랑의 기술> 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고 저자 소개 편에 소개가 되어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줄 몰랐다.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라고 한다. 1900년에 태어나 1980년에 죽었으니 한 번을 살았는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다. 심리학자이면 심리학자이지 웬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지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더 쉽게 이해가 된다. 히틀러로 대변되는 세계 2차 대전과 프로이트 학파의 탄생이 우연일 수는 없다.
내가 그런 시대를 살았더라도 정말 한탄스럽고 궁금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정신세계로 이 세상이, 이 사회가 이 꼬락서니로 돌아가는지 말이다.

사실 사랑 운운하는 책들을 쓰셨길래 본인의 이론도 뭐 신부님이나 부처님 같은 도 닦는 말씀만 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구매하고, 읽고 싶은 몇 챕터를 골라서 다 읽고 나서야 독일어 원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uthetisch Leben.


엄청 심플하다. 주체적인 삶.
와 라는 탄식이 나왔다.
제목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에리히 프롬 본인이 지은 것이 아니라 그의 마지막 조교였던 라이너 풍크가 그의 글을 모아서 엮어낸 책이므로 국제 에리히 프롬 협회의 라이너 풍크가 지었다고 봐야 더 정확할 것이다.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제목의 작명 센스도 참 특별한 거 같다.

한국어 번역본에서 제목을 살짝 뒤틀어 독자의 호기심과 내면의 자아 불만족을 너무나 잘 건드렸다고 생각한다.

책은 목차만 보아도 주옥같은 표현과 문장들이 사치스럽게 낭비되고 있으며, 나이 30 중반에 중2병을 재발하게 만든다.

차례

서문 - 라이너 풍크

01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02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03 자유는 진짜 인격의 실현이다
04 자아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하다
05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시장에 내다 판다
06 현대인은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07 진짜와 허울의 차이를 보다

챕터 01, 02, 07을 읽었다.

결국은 마지막에 어설프게 자기 스스로 치유니 뭐니 노력했다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로 망가지지 말고, 제대로 된 정신분석학자를 찾아가서 내면 심리에 대한 분석 및 감정을 받으라는 이야기다.

책의 전반적인 어조는 상당이 비관적이라 느꼈다. 우리가 무심코 넘어갔을 문제들이 사실은 신경증과 같은 정신적 이상 증세에 의한 것일 수 있으며, 현대인에게 많은 우울증은 그저 감기처럼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병’으로 바라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프면 주위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말하고 방법을 찾으라는 말 같은데,
최신 자기 계발 서적이 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나, 세상은 생각한 대로 뭐든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는 유아적 긍정주의가 없는 책이라 상당히 개인 취향을 저격한다.

우리는 질병을 권태, 삶이 무의미하다는 느낌, 풍요롭지만 아무 기쁨도 없는 삶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느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랄 모른다는 느낌이라 부른다....... 우리는 이 질병을 ‘신경증’이라 부른다. (책 본문 29-31쪽 )

 

무엇을 질병으로 불러도 되는지를 주입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해서 죽겠다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에 시달린다고,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할 수 없어 괴롭다고, 술을 마시고 싶어 미치겠다고, 직장이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허용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질병의 표현 형태로 가능한 온갖 것들을 들먹인다. (책 본문 31쪽)

 

주체적인 삶과 신경증이 정확히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지는 책을 전체적으로 읽지 않아 이해를 하지 못하였지만, 신경증이라는 현대인이 누구라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법한 것들을 병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요즘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되려 요즘 사람들은 듣지 못했을 법한 따끔한 잔소리들을 해주는 책이라 와 닿는 구절과 새기는 말들이 많은 책이었다. 

 

심리학자가 쓴 글을 책으로 엮었으나, 전공분야에 대해 정설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되려 그냥 일반 독자들이 유희를 위해 읽으면 좋을법한 책이라 생각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들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책들보다 훨씬 더 디스토피아적 가상의 세계를 체험하는 느낌을 준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문학적인 감상과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려나?

 

결론을 말하자면 책의 어조가 나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좋은 것은 좋다고 그렇지만 나쁜 것은 확실히 나쁘다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많이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